산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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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고령군 하동면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곡동과 병합되고 산당동이라 하여 쌍동면에 편입되었다가 임천면이 병합됨에 따라 쌍림면에 편입되어 1988년 5월 1일에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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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 마을이 번창하려면 연못이 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이 마을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항상 흐르고 있어 연못이 필요가 없어서 마을 이름을 뫼 山자에 못 당(塘)자를 써 산당이라고 하며 또 산제당(山祭堂)이 있었으므로 신당, 산댕이, 산당이라고 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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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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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고령군 상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백산동이라 하여 쌍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에 쌍동면과 임천면이 병합됨에 따라 쌍림면에 편입되어 1988년 5월 1일에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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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栢山) : 마을 뒷산 이름이 잣뫼인데 잣나무가 많아 백산이라 하고 잣나무산 아래 마을이라 하여 백산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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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1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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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고령군 상동면 지역으로서 학이 많이 서식하므로 학골, 학동이라 부르는데, 1914년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고동과 덕곡동을 병합하고 하거동이라 하여 쌍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에 쌍동면과 임천면이 병합됨에따라 쌍림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에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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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골ㆍ학동(鶴洞)ㆍ하긋골 : 이 마을 앞에 안림천이 흐르고 있어 공기가 맑고 들이 넓으며 산에는 큰 소나무들이 많아 학이 매년 많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고 서식한다. 예부터 鶴이 서식하므로 학골ㆍ학동ㆍ하긋골이라 하는데, 지금도 학골로 많이 불리운다. 또 이 마을의 지형이 마치 학이 나래를 편 것 같아 학골이라고다 한다. 또 일설에는 개척 당시 마을 뒷산의 옥녀봉(마구실에 있음)에 仙女가 옥가마를 타고 내려왔다 하여 玉女峰이라 하고, 이곳까지 수레를 타고왔다 하여 하거(下車)라 한다. 또다른 유래는 신라시대 어느 임금이 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주변의 학처럼 생긴 지형을 보고는 현재의 마을이 있는 곳에 큰 못(늪)이 있지 않나 하고 수레에서 내려 둘러 봤다고 하여 하거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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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2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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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고령군 상동면 지역으로서 학이 많이 서식하므로 학골, 학동이라 부르는데, 1914년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고동과 덕곡동을 병합하고 하거동이라 하여 쌍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에 쌍동면과 임천면이 병합됨에 따라 쌍림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에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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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숭산이 서남쪽으로 뻗어내려 머문곳에 촉대봉이 높이솟아 뻗어내린 청용등과 서쪽으로 뻗어내린 백호등이 요봉산을 감싸안고 산 아래 양지 바른곳에 아늑하게 터를 잡은 마을이 하거2리 이다. 남쪽으로는 넓고넓은 용담들이 펼쳐있고 서쪽으로 노태산과 만대산이 높이 솟아 동으로 뻗어 내려 용담들을 휘감고 가야천 맑은 물은 용담들을 적셔주는 젖줄이 되어 사시사철 풍요롭고 복된 고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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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라 하는 동명은 하늘에서 선녀가 요봉산에 수레를 타고 내렸다하여 하차란 동명이 생겼으며, 마고선녀가 요봉산 아래 살았다하여 마고실이라 부르기도 하며 요봉산 상봉을 옥녀봉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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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ㆍ송곡(松谷)ㆍ명덕(明德) : 옛날 이곳 지리에 밝은 풍수가 이 마을에서 글을 많이 읽으면 덕이 밝아진다고 하였다고 송골ㆍ송곡은 송(宋)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송골ㆍ송곡이라고도 한고, 또 이곳에는 소나무가 많이 우거진 골짜기란 뜻에서 송곡 또는 송골이라고도 하는데 소나무가 많아 송곡이 된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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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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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고령군 상동면 지역으로서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어은동과 송정동을 병합해 신촌동이라하여 쌍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에 쌍동면과 임천면이 병합됨에 따라 쌍림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에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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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나루ㆍ봉진(鳳津)ㆍ새나루ㆍ신진(新津)ㆍ신촌(新忖) : 이마을 앞에는 가야산에서 흐르는 내와 경남 합천국 묘산에서 흘러오는 내가 서로 합류하는 지점으로 안림천을 이루는데, 마을주민들이 내왕하기 위하여 나루터를 만들려고 하는데 큰새(봉)가 날아와 울어 이 나루 이름을 봉나루ㆍ봉진이라 부르다가 새봉(鳳)자의 봉자를 빼고 새나루ㆍ새나리로 불렀다. 이것을 또 한문으로 표기하여 신촌이 되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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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이ㆍ송정(松亭) : 이 마을은 해인사로 가는 국도변 산기슭에 위치한 10여 가구의 조그마한 마을인데 이곳에 벽송정(碧松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송정이라 부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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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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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고령군 유천면 지역인데 1914년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박곡동과 신림동을 병합해 박곡동이라 하여 임천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이 병합되어 쌍림면에 병합되고 신곡동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에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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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ㆍ산곡(山谷)ㆍ산주(山州) : 큰산 곧 만대산 밑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산골 또는 산곡이라 하였고, 고령군내 많은 마을이 洞, 里로 되어 있는데 산주만은 洞ㆍ里가 아니고 고을주(州)자로 쓴 것이다. 옛날 적화현이 지금의 야로면 중심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때 신라와 백제의 전쟁으로 잠시 이곳 산주로 적화현이 옮겨졌으므로 산주가 되지 않았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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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기마ㆍ아랫마ㆍ객기(客基)ㆍ하동(下洞) : 옛날 난리를 피하기 위하여 객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객기마을, 객기마가 되고, 산주보다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아랫마을ㆍ아랫마가 되고 또 한문 표기로 하동이라 함
부례(扶禮) 돌저리 (돌절, 石寺`)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인데 옛날 이곳에서 보기드문 烈女가 났다 한다. 그래서 예의가 돋보여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된다하여 도울 부(扶), 예도 례(禮)를 써서 부례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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